성수의 고즈넉한 단면

누군가는 성수동을 핫 플레이스라고 하죠. 트렌디하고 정체성이 뚜렷한 공간이 많지만, 그만큼 붐비기도 해 막상 조용히 생각을 정리할 만한 곳이 없어 아쉬워하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사실 성수동 곳곳에는 고요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공간들도 많아요. 오늘은 차분하게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는 카페를 소개해 드릴게요.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 쉼표를 찾고 싶은 분들께 추천합니다.
리커버리커피바 : 골목 깊숙한 곳의 호주식 커피 맛집

블루보틀 건물 뒤편 골목길에는 주택이나 오래된 철물점같이 생활이 묻어나는 건물이 이어져 있어요. 골목 깊숙이 걸어가다 ‘이런 곳에도 카페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쯤, 테라스에 놓인 벤치와 테이블이 눈에 띕니다. 리커버리 커피바는 어두운 외관에 간판도 없어 하마터면 그냥 지나치기 쉬워요. 한적한 주택가에서 마치 보호색처럼 자리한 이곳을 소개할게요.


카페 안에는 조명이 많지는 않았지만, 큰 창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 덕분에 아주 어둡게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캠핑 의자와 오래된 소파, 우유 상자로 만든 테이블도 눈에 띄었습니다. 자유롭고 투박하지만 동시에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졌어요. 올리브그린 색으로 칠한 벽은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을 더해주는 것 같았고요.


리커버리커피바는 필터 커피 맛집, 라테 맛집으로 이미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합니다. 여러 메뉴들 중에서도 호주식 카푸치노는 대표님의 호주 워킹홀리데이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시그니처 메뉴라고 해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카푸치노의 두툼한 거품보다는 조금 얇은 거품이 얹어지고, 그 위에 코코아 가루를 뿌려서 제공된다는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커피만 마시기 아쉽다면, 브라운 치즈와 아이스크림을 올린 크로플도 함께 드셔보세요. 겉바속촉과 단짠단짠이 어우러진 마성의 디저트랍니다.


뚝섬역 뒤 골목 깊숙한 곳의 리커버리커피바는 어떤 방해도 없이 온전히 커피 맛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 이곳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깊은 생각에 잠겨보는 건 어떨까요?
피카워크샵 : 일과 쉼의 조화가 있는 공간

피카(Fika)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스웨덴어로 ‘커피를 마신다’는 뜻으로, ‘커피와 함께하는 휴식 시간’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고 해요. 스웨덴 사람들에게 피카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행위를 넘어 바쁜 일상에서 숨을 고르기 위해 의도적으로 가지는 시간인거죠.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서울, 성수동에도 피카의 의미를 지향하는 카페가 있다고 합니다. 일과 쉼의 조화를 적절히 취할 수 있는 공간, 피카워크샵입니다.


커피와 함께하는 휴식이라는 뜻의 ‘피카’와 작업장이라는 의미를 담은 ‘워크샵’, 이름에서부터 일과 쉼이 함께 있는 공간임을 알 수 있는데요. 이름뿐만 아니라 카페 인테리어에서도 이런 점이 느껴졌습니다.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쪽은 우드와 베이지 톤의 밝은색 가구를, 커피를 만드는 공간과 커피 머신 등은 어두운 블랙 톤을 활용한 게 눈에 띄었어요. 색으로 휴식과 작업 공간을 구분하게 된 건 내부가 넓지 않아 파티션 역할을 하는 설비를 마련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한 대표님의 아이디어라고 합니다.

초록빛이 보이는 창가를 마주하며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점도 피카워크샵의 매력이 아닐까요? 카페 옆에는 작은 공원과 놀이터가 있어 언제 오든 계절의 변화를 한 눈에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봄날의 주말, 초록을 즐기고 싶지만 서울숲이 너무 북적거린다면, 이곳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녹음을 만끽해 보세요.


피카워크샵에서는 직접 원두를 로스팅해서 판매하고 있어요. 그러니 커피를 주문할 때 어떤 원두가 좋을지 여쭤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바쁜 일상에 지친 당신에게 피카워크샵은 커피 한 잔과 함께하는 휴식을 권합니다. 이곳에서 의식적인 쉼을 찾아보세요.
미크 로스터리 : 나른한 오후의 달콤한 휴식

뚝섬역 2번 출구 옆 골목길로 들어서면 교회를 중심으로 오른쪽으로는 아파트 단지가, 왼쪽으로는 층수가 낮은 주택들이 오밀조밀 모여있어요. 주택가로 들어가는 골목 초입에서 미크 로스터리를 만날 수 있는데요. 동네의 작은 쉼터이자 성수동 골목 풍경이 시작되는 이정표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담한 카페 내부는 고소한 커피 향기로 가득합니다. 음료 제조 공간 뒤편에서는 직접 원두를 로스팅하는 사장님의 모습을 볼 수도 있어요. 음료를 주문할 때 취향에 따라 원두를 선택할 수 있고요. 쿠키나 피낭시에 등 커피와 함께하면 더 좋은 베이커리 메뉴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바쁘게 돌아가는 도심의 풍경 대신 평화로운 동네 골목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습니다. 특히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 덕분에 아늑한 분위기를 더 만끽할 수 있었어요.


나른한 오후에 당 충전만 한 게 있을까요? 미크 로스터리의 시그니처 메뉴 ‘Meek’s Cream’과 피낭시에면 오후를 깨우기에 충분합니다. ‘Meek’s Cream’은 고소한 라테 위에 크림을 가득 올린 아인슈페너인데요. 쫀쫀한 크림에 부드러운 피낭시에를 콕 찍어 먹는 조합을 적극 추천해 주셨어요. 달콤한 커피와 함께 한 낮의 휴식을 즐기고 싶으시다면 미크 로스터리가 제격일 겁니다.
브루잉세레모니 : 일상과 잠시 분리된 듯한 공간

좋은 카페와 맛있는 음식을 찾는 이들로 붐비는 성수동에서, 조용한 카페를 찾기란 쉽지만은 않죠. 그렇지만 성수동 한복판에도 바쁜 일상과 잠시 멀어진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카페가 있어요. 이번에 소개할 ‘브루잉 세레모니’는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 붉은 벽돌 건물의 통유리창 안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길을 가다 새카만 유리창과 그 앞 자그마한 입간판이 세워진 것을 보고 어떤 곳인지 살펴보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분들도 꽤 있더라고요.


문을 열면 바깥 풍경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공간을 만나게 됩니다. 공간에 들어서면 커피 향기와 함께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정갈하게 놓인 스툴과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어요.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고, 안에서는 밖이 보이지 않는 유리창이 복잡한 도심과 카페 공간을 분리시키는 하나의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수동의 카페라면 종종 북적이는 사람들과 이들이 만드는 소리로 가득 차기도 하죠. 브루잉 세레모니도 피크 타임에는 카페를 찾는 손님들로 분주해지기도 하는데요. 그럼에도 이곳에서는 분주한 도심에서 잠깐 벗어난 것만 같은 평온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시간이 일상의 시간과 달리 천천히 흘러가는 것만 같은 공간이었어요.

카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커피 한 잔을 만드는 모든 과정이 이 곳에서는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졌습니다. 바에 놓인 원두 카드 중 본인 취향에 맞는 향미를 고른 후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만드는 모든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는데, 마치 작은 연극 무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손님에게 커피를 내줄 때의 모습도 경건해 보이기까지 했고요.

때와 장소에 따라 커피 한 잔이 주는 의미가 다르잖아요. 브루잉 세레모니에서는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일이 휴식을 넘어 나를 위한 하나의 의식이 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커피 한 잔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정성과 시간만큼, 이 곳에서 한 잔의 커피를 즐기는 시간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edit|photograph 진정훈
사람들이 많이 찾는 지역을 혼자서도 잘 찾아다닌다. 쉬는 날이면 스마트폰에 저장해 둔 리스트를 보면서 하루에 서너 곳씩 돌아다니는데, 직접 찍은 사진을 편집하고 글을 쓰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는 게으른 기록자이기도 하다. 좀 더 ‘부지런한 기록자’가 되기 위해 사부작사부작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