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날수록 만듦새가 빛을 발하는 브랜드, 월스와일 무브먼트

브랜드 언박싱
브랜드 언박싱은 우리 주위에 빛나는 브랜드를 소개하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브랜드를 대하는 태도, 제품에 대한 철학 등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의 고유한 생각을 나눕니다. 여러분의 언박싱을 더욱 특별한 순간으로 만들어 드릴게요.

Editor’s note
좋은 디자인과 만듦새. 월스와일 무브먼트가 추구하는 가치는 명료하다. 브랜드 이름처럼 ‘가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시각적, 기능적인 완성도를 높이는 데 노력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어느 누구의 일상에도 녹아들 수 있을 만큼 담백하지만, 여느 브랜드와는 다른 월스와일 무브먼트만의 고유함이 묻어나는 제품을 완성할 수 있는 이유다.
월스와일 무브먼트는 어떤 브랜드인가요?
월스와일 무브먼트는 가방, 모자, 니트웨어를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는 브랜드입니다. 좋은 만듦새와 타임리스한 디자인을 지향하고, 제품뿐만 아니라 웹사이트를 통해 브랜드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도 함께 제공하고 있어요. 저는 월스와일 무브먼트를 운영하는 강준혁입니다.

강준혁 대표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이름이 인상적이에요. 어떤 의미를 담은 건지 궁금합니다.
처음 브랜드를 준비할 때, 단순히 제품만 판매하는 것을 넘어 브랜드에서 제공하는 모든 것을 통해 사람들이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하기를 바랐어요. 예를 들면 질 좋은 제품을 구매해 오래 사용하는 게 그렇지 않은 제품을 여러 번 사용하고 버리는 것보다 환경에 도움이 될 수 있겠죠. 또 의미 있는 콘텐츠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좋은 영감을 줄 수도,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는 거고요. 이런 ‘가치 있는 움직임’을 해나가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어요.
의미를 듣고 나니 브랜드의 시작이 더 궁금해져요. 어떻게 브랜드를 시작하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어요. 옷도 좋아했고, 특히 모자나 가방 등 잡화에도 관심이 많았죠. 막연히 제 브랜드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어요. 대학에 진학한 이후 혼자 티셔츠나 몇 가지 액세서리를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었고, 친구들과 남성복 브랜드를 론칭하기도 했어요.

문래동에 위치한 월스와일 무브먼트 사무실. 벽면에는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4학년 때 졸업 패션쇼를 준비하며 가방을 만들었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때 ‘가방을 중심으로 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보자’ 싶었죠. 런칭 초기에는 자금도 부족했고, 작은 브랜드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하나의 카테고리를 깊이 있게 파서 자리를 잡는 게 더 경쟁력이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월스와일 무브먼트의 첫 번째 제품. 강준혁 대표가 직접 구제 시장에서 리바이스 501 데님을 구매해 리메이크한 가방이다.
브랜드를 만들고 처음 출시한 제품은 리바이스 501을 리메이크한 가방이에요. 직접 구제 시장에서 데님을 구매하고 재단해 만들었죠. 당시 국내에는 그런 제품이 거의 없어서 패션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재미있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주목받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담백하지만 특별한, 고유의 이야기를 담은 디자인
브랜드를 준비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어떤 거예요?
좋은 디자인과 탄탄한 만듦새요. 이건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예요. 론칭 초반에는 업무 스킬도 부족했고 여건도 좋지 않아 제품 개발이 더뎠어요. 하지만 빠르게 성장하는 것보다 천천히, 단단하게 자리 잡기 위해 깊이 있게 준비했어요. 덕분에 5년 전에 발매한 제품을 지금까지도 많이 찾아주세요.
제품을 디자인하고 만드는 과정도 궁금해요. 월스와일 무브먼트만의 ‘타임리스한 디자인’은 어떻게 완성되나요?
디자인을 할 때는 불필요한 것들은 덜어내고, 기능적으로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저희만의 차별화된 포인트를 찾는 데 집중해요. 세련되고 질리지 않는 동시에 사용자의 편의성을 우선으로 고려해야 하죠. 일반 의류 디자인보다 가방은 기능적인 것들이 더욱 중요하거든요. 샘플을 만들면 직접 써보기도 하고 저희가 만족할 수준이 될 때까지 수정해요. 어떤 제품은 9개월간 샘플만 6-7번 만들고도 완성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드랍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 제품은 시간을 갖고 다시 수정하며 기획하고 있습니다.

제품을 보면 대표님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관심이 디자인에도 많이 녹아있는 것 같아요. 디자인에 대한 영감은 어디에서 얻으시나요?
여행 중 경험한 것들이나 어릴 때 겪은 일들, 그리고 현재 관심 있는 대상까지 다양한 것에서 영감을 받는 것 같아요. 무언가를 보고 바로 떠올릴 때도 있지만, 대부분 시간이 흐른 뒤에 갑작스럽게 연결되곤 해요. 예를 들어 5~6년 전쯤에는 한참 디터람스(Dieter Rams)와 브라운(Braun)의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여기에서 느낀 구조적인 면과 선의 분리를 가방 디자인에 연결 짓기도 하고요. 맥라렌 570S 캡 같은 경우 영국의 슈퍼카 제조사 맥라렌(McLaren)의 570S 모델을 모티브로 디자인했어요. 차량의 보닛이나 헤드라이트의 모양을 모자의 절개와 바텍으로 표현하거나, 도어의 모양과 엔진 위치를 참고해 패턴과 소재를 구상했죠.


강준혁 대표 사무실에 놓인 맥라렌의 슈퍼카 모형(좌), 맥라린 570S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맥라렌 570S 캡'(우).
슈퍼카에서 영감을 받은 모자라니, 재미있고 멋진데요. 시즌 컬렉션이 아닌 프로젝트 단위로 제품을 출시하잖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브랜드 초반에는 다양한 제품을 한 번에 보여드릴 만큼의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기도 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패션잡화 브랜드니, 일반적인 패션 브랜드의 정석적인 사이클을 따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시즌별 제품을 출시하는 것보다 제품마다 고유한 디자인 스토리를 부여하고 각각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더욱 초점을 맞추는 거죠. 한 시즌 판매하고 사라지는 제품이 아니라, 나이키의 에어포스나 뉴발란스 990처럼 제품 자체가 상징성과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요.
지금까지 출시한 제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제품을 하나만 꼽는다면요?
모든 프로젝트를 공들여 만들어서 하나를 꼽기가 너무 어려워요. 그냥 먼저 떠오르는 걸 이야기하면 데이팩과 비틀캡이요. 데이팩은 저희 가방 제품 중 개발 과정이 가장 길었어요. 거의 8-9개월 정도 걸렸는데, 크기 수정부터 디테일한 부자재 변경까지 꼼꼼하게 완성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공들였죠. 실제로 제가 일상생활이나 여행, 출장 중에도 매번 사용하는 가방이기도 해요.
비틀캡의 경우 제가 어렸을 때 키우던 장수풍뎅이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제품이에요. 직접 여러 번 패턴을 수정하고, 가봉을 보며 샘플을 만들었어요. 제 어릴 적 경험에서 디자인 소스를 얻은 만큼 재미도 있었고, 다른 곳에는 없는 실루엣을 만들어 더욱 의미도 있었죠.


데이팩 블랙(좌)과 민트 그레이 컬러의 비틀 캡(우).
브랜드의 가치를 닮은 라이프스타일과 취향
월스와일 무브먼트가 정의하는 ‘가치 있는 제품’은 어떤 것인가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용하는 데 무리가 없는 제품이요. 오래 사용하기 위해서는 디자인적으로도 질리지 않고, 내구성도 좋아야 하죠. 결국 앞서 말씀드린 것과 동일한데, 간결하지만 기능적인 디자인과 좋은 만듦새의 제품이에요.
브랜드의 고객도 그 가치를 아는 분들이겠네요. 어떤 취향을 가진 이들이 브랜드를 소비하기를 바라세요?
자기 일을 사랑하고, 동시에 취미 생활도 균형 있게 즐길 줄 아는 분들이요. 저희 제품 중에는 출퇴근 시나 등하교 시에 쓰기 좋은 제품도 있고, 가벼운 산행이나 아웃도어 활동을 즐길 때 활용하기 좋은 제품도 있거든요.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는 만큼 자기 일과 여가 시간을 모두 잘 즐기는 분들이 찾아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실제 고객의 이야기를 담아낸 저널의 유저 인터뷰도 인상적이었어요. 이 콘텐츠는 어떻게 기획하신 거예요?
브랜드 론칭 초반부터 제품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다양한 콘텐츠에 대해 많이 고민했어요. 저희 제품을 사용하는 분들은 어떤 일을 하고, 또 그분들의 삶에 저희 제품이 어떻게 녹아나는지 관찰하고 싶더라고요.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인터뷰이 모집 게시물을 올렸고, 이 외에도 제품 후기를 남긴 분께 직접 연락을 드리거나 업무적으로 알게 된 분을 섭외하기도 했어요. 콘텐츠를 계기로 만난 분들과 지금까지 연락하며 지내고 있어요. 직업이나 사는 곳은 달라졌어도 여전히 저희 제품을 잘 사용하고 계시는 걸 보면 뿌듯해요.


월스와일 무브먼트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유저 인터뷰'. 실제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유저 인터뷰 외에도 WM’s SELECTION, 제품이나 소재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시잖아요. 이렇게 콘텐츠에도 집중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좋은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제품뿐 아니라 브랜딩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제품을 소비할 때는 디자인, 가격 등과 같은 소구점이 있을 텐데, 그중 하나가 브랜드에서 풍기는 무드인 것 같거든요. 제품도 멋있어야 하지만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 자체도 멋있어야 하잖아요. 브랜드를 멋있게 만들어 주는 요소 중 하나가 콘텐츠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홈페이지가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고 룩북을 보여주는 것뿐 아니라, 풍성한 볼거리가 있는 하나의 매거진처럼 느껴지길 바랐고요. WM’s SELECTION의 경우 ‘고객에게 우리 제품처럼 가치 있고 좋은 물건을 제안해 보자’ 하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들
제품의 성공을 평가할 때 고려하는 기준은 어떤 것들인가요?
저의 애정이나 만족도와는 별개로, 매출이나 판매량이 그 지표가 되어야 한다고 봐요. 제품의 완성도는 기본이고요. 또 어떤 이벤트나 특별한 노출로 인해 반짝 오른 것이 아닌,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만들어진 결과여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품을 기획하고 만드는 과정에서는 저와 팀원들의 기준에 부합하는지가 가장 중요하죠. 그렇지만 출시 이후에는 저희의 만족도가 아무리 높더라도 고객의 피드백이 좋지 않으면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피드백은 제품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고요.
무신사에는 어떤 계기로 입점하시게 됐나요? 입점 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지도 궁금해요.
저희 제품을 더 널리 알리고, 다양한 고객층을 확보하고 싶었어요. 자사몰과 SNS 계정을 통한 유입도 많지만, 더 큰 판매 채널을 통해 보다 넓고 다양한 기회를 만들고 싶었죠. 오는 6월 30일부터 한남동 무신사 스퀘어에서 2주간 팝업스토어를 진행하는데, 아마 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시간이 지나도 가치를 잃지 않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브랜드를 운영하며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있다면요?
당연하게도 초심, 그리고 브랜드의 가치관인 좋은 디자인과 만듦새요. 그간 해 온 것들을 돌아보면 트렌드에 부합하는 일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트렌드와 관계 없이 하고자 한 것들을 꾸준히 해왔어요. 앞으로도 월스와일 무브먼트가 추구하는 간결하고 기능적인 디자인과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것은 꼭 지켜 나가려고 해요. 예를 들어, 저희가 쓰고 싶은 원·부자재가 가격이 높더라도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포기하지 않아요. 이를 통해 좋은 제품을 만들면 고객분들도 알아주실 거로 생각하고요.


문래동에 위치한 사무실에 놓인 패턴 작업물과 원단.
요즘 집중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어떤 것들이에요?
우선은 6월 말 무신사 스퀘어 한남에서 진행되는 팝업 스토어에 집중하고 있어요. 또 올 하반기에도 다양한 브랜드, 크리에이터분들과 협업도 예정되어 있고요. 이 밖에 기존에 리메이크 제품을 선보이던 프로젝트 1의 리뉴얼도 기획 중이에요.

앞으로의 월스와일 무브먼트는 어떤 모습일까요?
어떤 제품, 서비스를 만들든 간에 지금의 가치와 결을 유지하고 싶어요. 브랜드가 커지면 여러 가지 니즈를 비롯해 고려해야 할 게 더 많아지잖아요. 그럼에도 타협하지 않고 지금껏 해 온 것처럼 천천히 성장해 나가고 싶어요. 그리고 브랜드의 이름처럼 저와 팀원들, 그리고 월스와일 무브먼트를 지켜봐 주시는 고객 모두에게 가치 있고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브랜드가 되어있기를 바라고요.
마지막입니다. 월스와일 무브먼트를 아끼는 고객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올해 8월이면 월스와일 무브먼트를 시작한 지 만으로 5년이 되어요. 많은 사랑과 관심을 주신 덕분에 천천히,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어요. 앞으로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일상에 가치 있는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dit by 정소은 Photo by 박솔지